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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는 임나일본부 시절부터 각인 되어온 '일빠의 유전자'가 있는 모양이다. 사실 이 일빠유전자는 임나일본부 시절 한반도 남쪽 주민에게 새겨졌다가 그대로 묻혔으나, 세월이 흘러 18세기 쯔음 조선시대 관료 김인겸이 일본에 조선통신사로 갔다 오면서 '일동장유가' 라는 기행문을 썼는데, 읽어보면 당시 일본 에도시대의 번영한 모습에 하악하악 거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못 믿겠으면 아래 띄워 줄테니 봐봐.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16일에 비옷을 입고 강호(동경)로 들어갈 때에
왼편은 마을이요, 오른편은 바다(태평양)로다.
산을 피하고 바다를 향해 있는 들판이 옥야 천리로 생겼는데
높은 누각과 집들은 사치스럽고 사람들이 번성하다.
성곽의 높고 장한 모습과 다리와 배의 대단한 모습이
좌우에 구경하는 사람이 몹시 장하고 숫자가 많으니
어설픈 붓끝으로는 이루 다 적지 못하겠도다.
삼십 리 오는 길이 빈틈없이 인파로 이어져 있으니,
대체로 헤아려 보면 백만이 여럿이로구나.
여자들의 모습이 아름답기가 명고옥(나고야)과 한가지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실상사로 들어가니 여기도 무장주일세,
처음에 덕천 가강(도쿠카와 이에야스)이 무장주의 태수로서,
풍신 수길이 죽은 후에 그 가계를 없애 버리고,
이 땅(강호)에 도읍을 정하여 강하고 풍요로우며,
일을 계획함이 신중 은밀하며 법령도 엄격하고
생각하는 것도 깊어서 왜국을 통일하니,
아무튼 제 무리에서는 영웅이라고 하겠도다.
덕천 가강이 죽은 후에 자손이 이어져서
이 때까지 누려 오니 복력이 기특하다.
17일에는 비가 개지 않아서 실상사에서 묵었다.


아무튼 이 시기 부터 4세기 쯔음에 각인된 일빠의 유전자가 꿈틀꿈틀 싹을 피우려 하고 있었다.
'일빠 맹아론'이랄까? ㅋ 그리고 여차여차하여 조선은 망하고, 열도인이 한반도를 지배하게 되었는데
그 때는 열도인이 관대한건지 모르겠으나 열도인 까도 경찰서에서 반성문만 쓰면 풀려나는 시절이라도(준전시, 전시 제외) 일본애들을 많이 깠거든.

그런데 해방 이후가 되어 50년 가량 흐르니 이건 뭐...... 당시 지배 시기보다 더 하다 더해.

-_-;

후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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