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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대책 회의라는 좆불 집회 주최측이 추가 협상은 국민을 사기 치는 거라며 주장했다.
사실 조금만 파보면 재협상 → 국민 80%가 지지하는 FTA 포기나 마찬가지인데 이들은 뭘 모르는건가?
왜 이런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이들의 구극적인 목표가 FTA 결렬이라면? ㅋㅋ

아, 그런데 FTA 결렬이 구극적인 목표인 집단이 꽤 있었는데.... ㅋㅋ

배후가 국민이라는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시민을 대표한다는 주최측이 어째 시민들과 상반되는 내용을 주장하는거지? 정말로 웃기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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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리시버를 써보고 싶어요


ㅆ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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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담배는 값이 아무리 올라도 고정 소비층이 잘 줄어들지 않는 대표적인 상품이다. 우리의 고정 소비층 아무개들은  2500원 짜리 담배 한 갑을 사면 국가에 세금을 약 1500원을 내는데, 별 꺼 아닌거 같지만 이걸 연 단위로 생각하면 저가형 노트북이나 pmp, 네비게이션 한 대 값이며, 이게 10년이 되면 애 하나 대학 1학기 학비는 된다. 아무튼 우리 여기서 하나 가정을 해보자. 대충 애연가(heavy smoker) A씨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 사람이 꾸준히 하루 3갑씩 핀다고 치자, 그럼 그가 국가에 내는 세금은 얼마나 될까? 대충 계산기로 두들겨 보면 다음과 같다.

1달에 4500*30=135000圓
1년에 4500*365=1642500圓
10년에 4500*3650=16425000圓

1달 동안 A씨가 담배를 핀다고 낸 세금은 어디 조금 괜찮은 음식집에서 쓰는 금액이지만, 1년이 되니 괜찮은 사무용 노트북 하나는 살 수 있는 금액이 되었고, 그게 10년이 되니 A씨의 씩씩한 아들 A+의 사립대 1년 학비 정도가 되었다.

아무튼 A씨가 이렇게 애국하는 동안 그의 폐는 심각하게 망가졌고, 결국 A씨는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얼마 못가서 대학 들어가는 아들 A+를 남겨둔채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러나 A씨의 아들 A+씨는 어디 호소 할 곳이 없다. 있다면 보험회사 정도? 정작 아버지의 즐거운 기호품을 판 국가(민영화 됐으니 KT&G라고 할까...)는 법에 의해 경고 라벨을 붙였다며 자기들 책임이 아니란다. 만약 A씨가 보험을 들어놨으면 A+는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하나도 안 남기고 떠나버렸으면 앞 길이 막막한 A+는 어디에 호소 해야 할까?

이렇게 되는 걸 막기 위해 국가는 모든 담배 수요를 불법화 하고, 막대한 세금원을 포기할까? 절대 그렇게 하실 정부가 아니다. 그래서 무성의하게 아무도 신경 안 쓰는 경고 라벨로 회피 해보시겠다? 너무 무책임 한 거 아닌가?

그래서 나는 이런 대안책을 생각했다.

일단 담배 연금을 새로 만들고, 담배 연금에 필요한 재원은 소비자가 담배 구입시 모든 세금 기록을 반드시 남기게 하여, 담배에서 징수하는 세금 일부를 재원으로 한다. 만약 소비자가 담배로 인해 병(폐암 등)에 걸려 투병하거나 사망 했을때 담배 연금 기금으로 이때까지 기록된 세금 기록을 참고하여 그에 맞는 위로금으로 지급하고, 명예 국가유공자(말 그대로 이름뿐인 국가유공자)로 지정한다.

이렇게 하면 사후 명예(?) 때문에 달려들 물고기들이 있을 것이고, 국가 입장에서는 물고기들 덕에 세입이 늘어 희희락락 할 것이다.  마치 조선시대의 '공명첩' 같지 않은가? 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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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영·호남 그들은 왜 아직도 평행선인가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대선 후보에 대한 누리꾼의 설전(舌戰)도 뜨거워 지고 있다. 특히 후보에 대한 옹호 혹은 비난 의견에 대해 여지없이 따라오는 댓글이 있다.“너 전라디안(경상디안)이지?” 정치적 이념이 다른 상대방을 ‘경상디안’ 혹은 ‘전라디안’으로 표현하며 공격하는 새로운 형태의 비방전이 한창이다.‘경상도’와 ‘전라도’에 사람을 의미하는 영어 접미사 ‘∼an’을 붙여 만든 이 말은 지역감정에서 자유로워야할 20·30대 젊은층에게도 아직 지역감정의 깊은 골이 남아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영·호남 젊은 세대들이 서로의 어떤 면에 대해 서운함을 느끼고 있을까. 일상의 사례들을 통해 이들이 느끼는 지역감정을 들어보았다.

“호남 아픔 이해 못하는 것 같아 서운”

어린시절을 광주에서 보낸 회계사 김모(32·여)씨는 1980년 ‘광주의 아픔’을 하나 갖고 있다. 당시 김씨의 집에도 계엄군이 쏜 총알이 쏟아지면서 장독대가 깨지는 등 하루하루가 무서움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김씨 집에는 피해자가 없었지만 그때 이후로 동네에서 늘 보던 주민 몇 명은 다시 볼 수 없었다. 부모님께 ‘그 아저씨·아줌마 어디 간 거냐?’고 물었다가 ‘다시는 그 일을 입 밖에 꺼내지 말라.’며 혼나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 서울로 전학 온 탓에 주변 사람들은 자신을 서울 토박이로 알아서일까. 간혹 영남 출신 동료나 선배들로부터 “전라도 사람들은….”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다. 대놓고 반박하지는 않아도 이들이 호남인들의 아픔을 잘 모르는 것 같아 서운하기만 하다.

“‘전라디안이 어쩌고’하는 식의 인터넷 댓글을 보고 있으면 젊은 세대들도 아직 지역감정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요. 어떤 사람들은 ‘전라도 출신의 김대중 대통령과 호남 지지를 받은 노무현 대통령이 나왔으면 충분히 보상받은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피해자들은 아직도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고 있거든요. 정치인이 억지로 용서를 강요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영화 ‘밀양’에서 전도연이 ‘난 아직 아이를 죽인 가해자를 용서하지 않았는데 왜 신이 먼저 용서를 했냐.’며 절규하는 상황처럼요.”

“고속도로 한 번만 달려봐도 금방 알 텐데…”

자동차회사에서 일하는 오모(32)씨는 출장 때문에 경부고속도로를 다닐 때마다 고향인 전북 익산이 떠오른다. 대구부터 부산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공업단지의 굴뚝 행렬을 보고 있으면 광양 말고는 이렇다할 공업지역이 없는 호남과 비교가 된다. 오씨가 살던 마을도 수십년간 편도 1차선 도로에 의지해 살다가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뒤에야 비로소 2차로로 확장됐다.

외환위기 당시 일부 정치인들이 “경상도 공장은 연기가 안 나는데 전라도 지역 공장 굴뚝에서만 연기가 난다.”는 주장에 큰 상처를 받기도 했다는 오씨는 경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를 한 번만 다녀보면 영·호남의 차이를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젊은 사람들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면서부터 호남은 살기 좋아졌다면서요. 지금 경상도는 죽을 맛인데….’라고 말하기도 해요. 아직도 호남에 대한 오해가 많은 것 같아요. 영화에서도 경상도 출신 조폭은 의리있는 집단으로 그려지는 반면 전라도 출신은 배신자들로 묘사되곤 하잖아요.”

“뜻밖의 환대에 고마워했던 적도”

반면 군산 토박이인 자영업자 이모(34)씨는 경상도에 대한 ‘특별한’ 지역감정을 갖고 있다.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준 투박한 경상도 아저씨에 대한 고마운 감정 때문이다.

몇 년 전 대구로 출장을 갔을 때였다. 당시만 해도 번호판에 차량등록지역이 표시되던 시절. 표지판을 보며 운전했지만 목적지가 나오지 않았다. 퇴근시간과 맞물리면서 옴짝달싹 못하게 된 상황이 되자 이씨는 옆차 운전자에게 목적지를 물어봤다.

운전자는 “반대로 가야 하는데…. 여기는 고속화도로라 유턴도 안 되는데. 대구는 길이 복잡해서 초행길이 어려운데 전라도서 여긴 뭣하러 왔노.”라며 쏘아붙이듯 말했다. 순간 이씨는 ‘내가 호남지역에서 왔다고 화를 내는 건가.’싶어 기가 죽었지만 곧바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그 운전자는 곧바로 차에서 내려 통행 차량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반대차선으로 건너가 오던 차들을 몸으로 막아 세우기까지 했다. 이씨의 차량이 유턴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주변 차량 운전자들이 “뭐하는 짓이냐?”며 욕설과 경적이 쏟아졌다.

“마. 고마해라. 전라도 손님께서 초행길이라 길을 잘못 오셨단 말이다. 니들 손님 접대 그렇게 하라고 배웠나.”그러자 시끄럽게 울리던 경적도 곧 사그라들었다고.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라는 게 이런 거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죠. 영남 지역에 대한 오해 같은 것도 한순간에 사라졌고요. 경상도 분들도 전라도에 오시면 마찬가지로 잘 해드릴 수 있을 텐데요. 이렇게만 서로 돕고 살면 지역감정은 곧 없어지겠죠.”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광주서 부산 사투리 썼다가 봉변 당할 뻔”

신문사 기자로 일하는 김모(30)씨는 몇 년 전 광주에서 겪은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살아있는 지역감정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전라도 장흥에서 군 생활을 할 당시 고향인 부산에서 부모님과 친구가 면회를 왔다. 외박을 허가받은 김씨는 친구와 함께 부대 인근 광주로 나가 중심가인 충장로의 한 고기집에서 회포를 풀었다. 술기운이 돌자 둘은 자연스레 부산 사투리를 쓰며 그동안 쌓였던 이야기를 나눴다. 그게 화근이었다. 김씨 주변에서 술을 마시던 손님 몇 명이 김씨를 둘러싸고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경상도 자식이 와 있나?”“썩 너네 동네로 못 가나.”라며 윽박질렀다. 소리가 커지자 다른 손님들도 합세해 김씨를 위협했다. 김씨는 10분가량 실랑이를 하다 주인의 도움으로 자리를 피할 수 있었다.

“단지 경상도 사투리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전라도 사람들이 그렇게 화를 낼 줄은 상상도 못했죠. 시비를 건 사람 중에 제 또래가 있었다는 것에도 놀랐고요. 아직까지도 지역감정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어 많은 생각을 했어요.”

“지나친 ‘우리끼리’ 때론 서운해”

은행에서 일하는 대구 출신 정모(26·여)씨는 한때 절친했던 호남출신 친구와 관계가 소원해진 게 ‘지역감정’ 때문은 아닌가 싶어 지금도 안타깝다.

대학시절 자격증 시험준비를 위해 방학마다 서울에서 학원을 다니던 정씨는 같은 이유로 전주에서 상경한 동성친구 A와 금세 친해졌다. 같은 처지여서인지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된 둘은 불과 1주일 만에 공부와 식사는 물론, 자는 시간 이외에는 늘 서로 붙어다니며 막역한 사이가 됐다.

하지만 학원에 군산 출신 B가 나타나면서 둘의 관계는 급속도로 변했다.A는 동향 출신이라며 B를 크게 반겼고, 고향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는 데 여념이 없었다.A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정씨와 함께하는 시간을 줄여나갔다. 방학이 끝날 무렵 정씨는 자신 대신 B가 A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한때는 A를 ‘영혼의 친구’라고까지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냥 일년에 몇 번 전화만 주고받는 ‘아는 사람’ 수준의 관계가 됐어요. 같은 고향 출신이라고 저를 멀리하면서까지 B를 반기던 그 친구를 보면서 남자들 말로 ‘의리’가 없어 보여 많이 서운하기도 했죠. 사조직을 철저히 금지하는 기업에서도 모 대학 동문회와 전라도 향우회는 못 없앤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잖아요. 혹시 저와 A를 갈라놓은 게 지나친 ‘우리끼리’의식 때문은 아니었는지 궁금하기도 해요.”

“술자리서 ‘선생님’ 찾던 친구 생각나”

전자회사에 다니는 대구 출신 조모(31)씨는 ‘지역감정’ 이야기만 나오면 대학시절부터 가장 친한 한 친구와의 에피소드가 생각나 절로 웃음이 난다.“서울은 눈 뜨면 코 베어 간다더니 서울역에서 신림동까지 택시요금이 5000원이 넘는 거예요.”라며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마치 자신만 속고 있는 듯 울분을 토하던 광주 출신 동기 A를 신입생 환영회 자리서 만났다. 조씨는 ‘저 녀석하고는 뭔가 통하겠다.’는 호감에 곧바로 그 친구 옆으로 가 술잔을 기울였고 이내 친해졌다.

그런데 술에 취하자 A는 갑자기 울먹이면서 “선생님”을 연발했다. 조씨는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을 찾는 줄 알고 “그렇게 보고 싶으면 주말에라도 내려가서 만나라.”고 A를 다독였다. 그러자 A는 취중에도 “우리 선생님은 그렇게 한가하신 분이 아냐. 큰일 하시느라 바쁘신 분이 나 같은 놈을 왜 만나 주시겠니.”라고 되레 조씨에게 면박을 주었다. 알고 보니 A가 찾던 선생님은 조씨의 생각과는 ‘다른’ 분이었던 것. 그 뒤로도 A는 술만 취하면 “선생님도 꼭 한 번 대통령을 하셔야 하는데….”라는 레퍼토리를 늘어놓았다.A의 술버릇은 실제로 ‘선생님’이 대통령이 된 뒤에야 사라졌다.

“97년 대선 때 하도 그 친구가 ‘선생님’ 찍으라고 사정을 해서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심정으로 저도 찍었다니까요. 그 친구는 지금도 ‘나라가 왜 이 모양이냐.’며 비판은 곧잘 하지만 그래도 선생님 뜻을 저버리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 친구나 저나 상대지역에 대한 나쁜 감정은 전혀 없는데도 선거에서만큼은 표심을 바꾸기가 쉽지 않은가 봐요.”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지역이 결혼에 미치는 영향

20·30 젊은 세대들에게도 과거 부모세대의 뿌리깊은 지역감정 의식이 남아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보여주는 한 결혼정보회사의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 조사에 따르면 영남지역과 호남지역 출신 미혼남녀 중 절반가량이 상대 지역 출신을 결혼 상대로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까지도 부모세대의 해묵은 지역감정이 자녀세대까지 대물림되고 있는 셈이다.

결혼정보회사 ‘웨디안´(대표 손숙)은 ‘지역이 결혼에 미치는 영향´ 설문조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조사는 서울·수도권, 영남지역, 호남지역 지역별 미혼남녀 200명(남녀 각각 100명)씩 총 6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기간은 지난달 21일부터 이달 14일까지 25일간이다.

웨디안 손숙 대표는 “영남지역과 호남지역 젊은 세대들이 ‘상대 지역 출신과의 결혼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이 각각 43%(86명)와 51%(102명)인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지역감정´이 젊은 세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어 동서 융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남지역의 경우 조사대상 200명 중 ‘배우자의 출신지역은 상관없다.´고 답한 비율은 53%(106명)였으며,‘서울·수도권 출신과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답한 비율은 4%(8명)에 불과했다. 호남지역 또한 응답자의 46%(92명)가 ‘배우자의 출신지역은 상관없다.´고 답했으며 3%(6명)만이 ‘서울·수도권 출신과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반면 지역감정과 무관한 서울·수도권 지역의 경우 응답자의 86%인 172명이 ‘배우자의 출신지역은 상관없다.´고 답했으며,8%(16명)와 6%(12명)의 응답자만 각각 호남지역과 영남지역 배우자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밝혀 영·호남과는 명확한 대조를 보였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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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도 너무 많이 봤구나???

사립 학교의 절정인 영국과

복지 조낸 해서 망한 아르헨티나를 비교 대상으로 삼다니....

-_-; 나사 좀 끼우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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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야무챠 역에 제임스 기선 리!

우왕ㅋ 굳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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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연이 공자에게 인을 물었다. 공자가 답하였다.

“스스로가 능히 주나라의 예를 실천할 수 있으면 그게 인이다.”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구체적인 덕목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허허.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도 말지니라.”

“아니, 대관절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입니까? 시청언동(視聽言動)이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각이며 행위인데, 생활의 모든 것이 예로 화할 수 없거늘, 그리 된다면 인간의 행위가 지나치게 속박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역정을 내었다.

“네 이놈! 사문이 나에게 있는데, 내가 무엇을 걱정하랴!”

그 때, 안연은 싱긋이 웃으며, 말하였다.

“본래 인(仁)이란 두 사람(二人)이 결합함을 이름이 아닙니까. 선생님께서도 아직 그 도리를 모르시는가 하옵니다.”

“네 지금 무슨 말을 하느냐?”

“곧 인의 진짜 도리를 선생님께 보여드리지요.”

“무, 무슨 짓이냐?”

안연은 그 가냘픈 몸에서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안 되는 힘으로 공자를 제압하고 공자의 아랫도리를 벗겨버린 후, 벽으로 밀어붙였다.

“좀 아프실 겁니다.”

안연은 자신도 아랫도리를 벗은 후, 전광석화와 같이 공자의 엉덩이로 전진하였다.

“허, 허억…”

공자의 아픈 신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안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것이 인의 이치이옵니다. 한 사람은 받고, 한 사람은 주기를 하면서, 결국은 서로에게 지극한 즐거움을 가져다 주지요!”

‘뿍짝뿍짝뿍짝뿍짝뿍짝뿍짝뿍짝뿍짝, 틴틴틴틴틴틴틴틴틴틴!’

마침 주변에는 다른 제자들도 없었다. 자로는 사냥이라도 하러 간 모양이고, 자공은 장사를 하러 간 모양. 덕분에 방 안에는 마찰음과 신음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 이놈. 아랫사람이 윗 사람을 범하는 것이 얼마나 중죄인지를 모른단 말이냐? 으응, 으응…”

공자는 안연에게 당하면서도 이를 갈면서 부르짖었다. 안연은 계속적으로 허리를 움직이며 이렇게만 답할 뿐.

“군군신신부부자자이옵니다. 스승이 올바른 인의 도리를 모르시니, 제자인 저라도 가르쳐 드릴 밖에요! 그래서 불치하문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뿍짝뿍짝뿍짝뿍짝뿍짝뿍짝뿍짝뿍짝, 틴틴틴틴틴틴틴틴틴틴!’

안연은 열심히 허리를 움직여 댔다. 공자는 더 이상의 반항을 하지 않았다. 다만 신음소리만 낼 따름이었다.

“키잉… 키잉… 키잉…”

“선생님. 아까전까지의 당당함은 어디 가셨는지요? 역시 선생님께서도 별 수 없는 음탕한 인간에 불과했던 겁니다.”

공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뿍짝뿍짝뿍짝뿍짝뿍짝뿍짝뿍짝뿍짝, 틴틴틴틴틴틴틴틴틴틴!’

“하악, 하악, 하악… 아아, 아아…”

공자의 입에서는 하염없는 신음만 나오고 있었다. 이제는 기운도 빠진 듯, 두 손은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흐흐흐. 이제 때가 된 듯 하군요. 저도 이젠 더 못 견디겠습니… 으, 으윽…!”

“허, 허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공자의 외마디 비명이 방을 메웠다.

한참 뒤,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본 공자는 깜짝 놀랐다. 안연은 얼굴이 새파래진 채 죽어 있었던 것이다.

안연의 장례를 치를 때가 되자, 공자는 전례없이 통곡하였다. 그러나, 안연의 아버지가 공자의 수레로 안연의 곽을 만들려 청하였으나 공자는 거절하였다. 이유는 자기 자식에게도 곽을 씌운 적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다. 계강자가 공자를 불러 물었다.

“그대의 제자 중 누가 가장 학문을 좋아했는가?”

공자는 약간 인상이 일그러지더니 뒤에 있는 제자들을 돌아 본 후, 겨우 답하였다.

“안회였지요. 하지만 불행하게도 단명해 죽었습니다. 지금은 없습니다.”

공자가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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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 ㅋ 굳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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